HIJO KANG 강희조 부교수 ·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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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학 · 한국어 · 언어와 사회

한글과 국뽕

Hangul and Nationalist Pride

· 글 16 · 강희조

유튜브를 보면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소위 ‘국뽕’ 컨텐츠들이 넘쳐난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음식을 좋아하고, 우리의 노래와 드라마를 사랑하며, 우리말을 열심히 배운다. 우리나라는 모두가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밤에 여성이 혼자 길을 걸어도 안전한 나라로 소개된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과 민주화 과정은 세계 유일의 사례로 언급된다.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이 우월하다고 찬양하고, 대한민국 출신의 선수들은 세계 최고로 여겨진다. 심지어 한반도의 생물은 다른 나라에 진출하여 토착 생물들을 초토화시킨다.

물론 자신의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위에 나열한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과도하게 되면 타국이나 타문화에 대한 비방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사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에게 국뽕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글이다. 반복하지만, 한글이 훌륭한 문자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글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전파하고, 그것을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한글을 한국어와 혼동해서 한글의 위대함이 아닌 한국어의 위대함을 말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김주원 2013, 훈민정음: 사진과 기록으로 보는 한글의 역사). 예를 들어 ‘장난 지금 나랑 하냐’에서와 같이 한글의 어순이 달라져도 다 알아듣는다고들 하는데, 이는 엄연히 한글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어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렇게 어순이 바뀌어도 의미 전달에 영향이 없는 언어는 라틴어나 일본어를 포함해서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역시 ‘한글’이 한 글자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라는 자랑도 많이 보이는데(예를 들어 ‘쫌!’과 같은 표현), 굳이 다른 언어의 예를 들자면 영어에서도 ‘please’를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 예로 감정과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노란색을 표현할 때도 ‘노릇노릇하다’, ‘노르스름하다’, ‘노리끼리하다’ 등 수많은 변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한국어만의 특징으로 보기 어렵다. 각 언어는 그 종류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힘든 미세한 의미적 차이를 실현하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 언어가 다른 언어들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은 대체로 틀렸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영어가 첨단과학을 논의하는 데 가장 적절하기에 영어가 다른 언어들보다 우수하다고 말을 할 수도 있으나 모든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충분히 복잡하고 정교하게 발전해 왔을 뿐이다. 즉 언어 자체의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 그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이 다를 뿐이다. 기본적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언어는 모두 창조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무한한 표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진정 문자로서의 한글을 보자. 한글이 매우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임은 언어학이나 문자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배우기 쉽다는 것 역시 큰 장점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한글이 ‘다른 언어의 모든 소리들을 표기할 수 있다’라는 식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우리가 영어 단어를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만 관찰해도, 영어의 발음이 완전히 표기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지구상 존재하는 문자 중에서 인간 언어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에 가장 가까운 것은 국제음성문자(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라 할 수 있다. 이는 특정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언어의 음성을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가능하다. 국제음성문자는 백 개 이상의 문자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문자들로도 모자라서 분음부호(diacritics)를 사용하여 미세한 차이를 표기하는 데 사용한다. 이렇듯 국제음성문자를 보면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소리들이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글이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근거로 음절의 조합을 들기도 한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을 모아쓰기 때문에 이러한 조합의 수가 매우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한글로 조합 가능한 글자가 11,172자라는 사실은 산술적인 가능성일 뿐이다. 실제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음절은 훨씬 적으며, 이는 한국어 특유의 음소 배열 규칙 때문이다. 반면 영어는 문자상으로는 음절이 드러나지 않지만, ‘Strengths’와 같이 한 음절 안에 자음이 겹겹이 쌓이는 구조를 가져 실제 발음 가능한 음절의 가짓수는 한국어보다 훨씬 방대하다.

21세기 들어 ‘야민정음’이라 불리는, 한글을 사용하는 다른 방식이 등장하였다. 멍멍이를 ‘댕댕이’로, 귀엽다를 ‘커엽다’로, 명곡을 ‘띵곡’으로 적는 등 유사한 한글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행위가 한글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인간은 언어를 ‘유희’의 목적으로도 사용하고, 야민정음 역시 이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관점에서는 이 현상이 한글의 약점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문자가 갖춰야 할 여러 가지 특성에는 변별성도 포함된다. 즉 개별 문자들이 서로 잘 구별되어야 좋은 문자라 할 수 있다. 야민정음의 예처럼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 변별성이 좋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이다. 물론 이렇게 컴퓨터를 사용하여 표준화된 문자(폰트)를 사용할 때에는 혼동의 여지가 거의 없으나, 사람이 직접 쓰는 경우 혹은 기록이 오래되어서 문자의 일부가 소실된 경우에는 이러한 변별성의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13번 글에서 언급했듯 영어 철자가 ‘역사의 흉터’라면, 한글은 ‘이성적인 설계도’다. 설계도는 명확하고 배우기 쉽지만, 설계된 범위 밖의 소리(외래어 등)를 담으려 할 때는 설계도 자체의 한계가 드러난다. 반면 엉망진창인 영어 철자는 역설적으로 온갖 차용어를 그대로 수용하며 그 복잡성 속에 많은 언어 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어떤 체계도 완벽할 수는 없으며, 각자의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한글을 사랑하는 진정한 방법은 그것을 신화의 영역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매우 논리적이며 편리하지만, 동시에 한국어라는 특수한 환경에 최적화된 도구—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에 기반한 자부심이야말로 타문화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는 성숙한 시민 정신의 시작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