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JO KANG 강희조 부교수 ·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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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사회 · 언어 변화 · 한국어 · 형태론

언어의 개인화

The Personalization of Language

· 글 14 · 강희조

필자는 20세기에 태어나 현재 21세기로 넘어와 살고 있다. 이 두 세기를 구별하는 많은 차이들이 있으나 개인적으로 많이 실감하는 차이는 바로 '표준화 vs. 개인화'이다. 20세기 한국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표준적인 상품들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공급하는 방식으로 성장하였다. 그래서 어렸을 적 소위 'KS'마크가 부여된, 한국산업표준을 지킨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방송은 공중파로 송출되는 세 채널(SBS가 개통되면서 네 채널)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봐야 했고, 초중고 교육 역시 '표준화'된 시민을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세기 말에 들어선 대형마트들은 표준화, 산업화의 끝판을 보여주었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필자에게 21세기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자동차와 같은 상품들도 (일부에 해당하는 이야기지만) 개인에 맞춘 주문제작이 가능하고, 방송은 개개인이 선택해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교육에서는 개성과 창의성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마트에 갈 필요 없이 클릭 몇 번으로 상품이 내 집 앞에 배송되도록 할 수 있다. 이렇듯 사회는 점점 개인의 개성이나 필요에 맞춰 공급해 주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는 언어에도 적용되고 있다.

한국어 역시 20세기에는 '표준화'가 대세였다.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하였고, 1988년에 이르러 '표준어규정'이 고시된다. 규정의 유무를 떠나 20세기 한국인들은 급속한 미디어의 발달과 병행하여 말의 표준화도 경험하게 된다. 방송에서는 방언, 혹은 사투리는 배제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교육에서도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권장 내지 강요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와서 각 지역 사투리의 특색을 점점 잃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젊은이들은 고향과 상관없이 부모세대의 사투리를 많이 잃어버렸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방송(드라마)에서도 본격적으로 사투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대표적으로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다), 사회적으로 사투리 역시 보존해야 하는 언어자원임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늦은 감이 있어서 사투리가 이전처럼 완전히 복원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지역 사투리의 복원과는 별개로, 필자는 한국어 역시 사회의 흐름에 따라 '개인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확하기 말하면 '개인 맞춤형 표현'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세기까지 개별 인물과 관련된 단어는 사람의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다양한 표현들이 개인 맞춤형으로 등장한다.

첫 번째 예로는 '고유명사+하다'의 표현이다. 이는 영어의 conversion을 참고한 것이라 추정된다. 예를 들어 류현진 선수가 LA 다저스에서 활동하던 전성기 시절에 6이닝,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면 '류현진이 류현진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필자의 좋지 않은 버릇 중 하나가 운전을 하면서 예민해진다는 점인데 운전 중 짜증을 내면 필자의 아들들은 어김없이 '아빠가 아빠했다'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더 나아가 특정 인물의 이름과 일반 단어를 혼합해서 사용하는 형태들이 등장했다. '윤식당'에서 등장한 '윤며들다(윤여정에 스며들다)', 유튜브에서 팽수가 사용하는 '팽하(팽수+하이)', 벤투감독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을 16강으로 진출시켰을 때 사용되던 '벤버지(벤투+아버지)' 등, '시무룩', '금쪽이'와 같은 일반적인 표현을 특정 이름과 결합하여 사용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

이러한 개인화 내지 개별화는 철자에서도 많이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수지'라는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 기존에는 로마자 표기법에 맞춰 'suji'라고 썼다면 최근에는 'suzy'와 같이 표기법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상표에서 흔하게 일어났던 일인데 'Kleenex'를 예로 들면 일반적인 'cl-'을 택하는 대신 영어 단어에서는 보기 드문 'kl-'을 선택하여 일종의 차별화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소 결이 다르기는 하나 이런 차별화된 표기는 꽤 오래 전부터 일어났었는데 우리가 지금도 많이 사용하는 'OK'는 사실 1830년대에 'all correct'를 장난스럽게 사용하던 것이 굳어진 표현이다. 최근에는 'easy'를 'EZ'로 쓴다거나, 'light'를 'lite'로 쓰는 것들 역시 차별화를 반영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개인 맞춤형 시대에 언어에도 개인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된 것일까? 명확한 논리적 근거는 없으나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러한 표현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교육에 의해서 '획일화'를 강요받았던 한국인들의 생각도 보다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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