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세대에게 박찬호 선수는 ‘말 많은 아저씨’ 정도로 알려져 있는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세대에게 박찬호 선수는 영웅이었다. 개인적으로 필자의
암울한(?) 군시절 단 하나의 기쁨은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활약상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찬호 선수와 관련하여 당시 재미있는(?) 논란이 있었다.
박찬호 선수는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였고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한국 기자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말의 중간중간에 ‘um~’이라는 감탄사를 넣었는데 한국어의 [엄]보다는 영어의
[əm]에 가까운 소리였다. 이를 본 한국인들이 미국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재미교포식(?) 한국어를 한다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박찬호 선수는 이후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박찬호 선수가 영어를 잘하는 척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난지 10여 년이 지나고
류현진이라는 또 다른 한국의 대표 투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대학생으로서 메이저리그에 불려 간 박찬호와 달리 그는 KBO에서 충분히
검증된 선수로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였고, 그의 곁에는 항상 통역이
함께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한국의 시청자들은 시합 중이나 공식
인터뷰에서 항상 통역을 대동하는 류현진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아니 미국에 진출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 영어를 잘 못
하나?’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류현진 선수는 영어를
충분히 학습한 상태였고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동료들과 영어로 서슴없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다만 경기 중이나 공식적인 인터뷰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통역을 거쳤던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박찬호 선수와
관련된 일이 고작 20년 전의 일인데, 그 2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토록 한국인들의 태도가 변한 것일까?
필자의 세대, 넓게 말해서 80년대와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은 영어를
‘글’로 배웠다. (물론 일부의 사람들이게는 이 이야기가 맞지 않을 수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그랬다는 의미이다.) 마치 중세 수도승들이 (당시에는
이미 죽은 언어와 다름없는) 라틴어를 배우듯이. AFKN을 시청하거나 ‘민병철
생활영어’와 같은 시리즈를 사서 워크맨 또는 마이마이를 통해 들으며
공부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던 시절이었다. 이보다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종로에 있는 학원에 가서 소수의 원어민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도 했다.
외화는 당연히 모두 한국어로 더빙이 되어 방영되었고 물론 인터넷도 없었다.
따라서 ‘말’로서의 영어는 먼나라 이야기였고, 영어로 말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자신감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해야 했다. 그래서 소위 ‘혀를 좀
굴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의 사이에 벽이 느껴지면서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한국인들에게 자랑이었던
박찬호 선수가 혀를 굴리는 순간 반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 영어는
한국인들에게 정복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인을
우리로부터 구별하는 ‘권력의 언어’로 여겼기에 그러한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들은 영어를 소리로도 접하면서 배웠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이영표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할
당시(2005~2008년),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 소속팀은 ‘토튼햄(Tottenham)’으로
표기되었다. 그러나 손흥민 선수(2015년 이후)가 프리미어리그로 옮기고 나서
그 소속팀은 ‘토트넘’으로 표기되기 시작하였다. 채 10년도 되지 않은 사이
그 표기법이 소위 철자위주 표기법에서 소리위주 표기법으로 변한 것이다.
물론 이는 정책의 변화에 따른 차이라 볼 수 있지만, 정책이 변화할 만큼
한국인들이 영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변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소리로
영어를 접한 젋은 세대들에게 더 이상 원어민의 발음은 생경하거나 낯설지
않다.
젊은 세대들은 나아가 더 이상 영어가 ‘미국의 언어’ 혹은 ‘영국의 언어’가
아닌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 세대에
비해 영어에 과도한 가치나 선입관를 부여하기보다는 하나의 유용한 도구로서
영어를 인식하는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류현진 선수가 괜찮은 도구를 습득하기 좋은 환경에서 그
일을 미루고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위와 같은 핀잔을 던지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요즘 학생들이 이전만큼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영어도 예외가 아니어서 독해 실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들만의 기준으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해라고 본다. 앞서
말했듯이, 비록 ‘글’로서의 영어에 관해서는 기성세대의 실력이 더 뛰어날지
모르나, ‘말’로서의 영어와 관련해서는 현재 젊은 세대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배움의 환경과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젊은 세대는
영어라는 언어에 대해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오히려
기성세대들이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 나아가 기성세대가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부끄러워하거나, 반대로 조금만 잘해도 우월감을
느꼈던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면, 영어를 하나의 도구로 쿨하게 대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은
오히려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진 시대의 당당함을 반영한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