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도와 유추

글 10 | 2026년 7월
지난 글에서 빈도(frequency)와 관련된 언어 변화를 이야기했는데, 이번 글 역시 빈도와 관련이 있다. 유튜버 중 ‘도른 에밀리(Emily Dorn)’라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독일 여자가 있다. 독일에서부터 한국어를 학습하여 꽤나 훌륭한 한국어 실력을 보여준다. (물론 액센트로 인해 들으면 외국인임을 알 수는 있다.) 그런데 몇몇 편에서 ‘이게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 맥락을 보면 ‘이거지’를 의도했음을 알 수 있는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실수 중 재미있는 경우여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 출처: 유튜브 도른에밀리 ‘이게지’라는 표현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을까? 언어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쉽게 ‘유추’를 떠올릴 것이다.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를 쓰자면 ‘패러다임 통일성(paradigm uniformity)’을 언급할 수 있겠다. 여기서 ‘패러다임’은 하나의 단어가 여러 맥락에서 사용되는 형태들을 나열한 것을 말한다. 일례로 명사 ‘소년’의 간략한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소년’의 패러다임 주격: 소년이 주제격: 소년은 목적격: 소년을 여격: 소년에게 도구격: 소년으로 서술격: 소년이다 이렇듯 한국어 명사, 혹은 체언의 패러다임은 비교적 쉽다. 명사에 각각의 격에 해당하는 조사를 결합하면 되는데, 몇몇 조사들은 명사의 마지막 분절음(자음 또는 모음)에 맞추어 이형태 중 하나를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예: 이/가, 은/는, 을/를 등). 그렇다면 ‘이게지’는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표준적인 형태(혹은 문어형)는 ‘이것’이나 구어에서는 ‘이거’라는 형태가 더 많이 사용되는데 그 간략한 패러다임을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이것’의 패러다임 문어 구어 주격: 이것이 이게 주제격: 이것은 이건 목적격: 이것을 이걸 여격: 이것에 이거에 도구격: 이것으로 이걸로 서술격: 이것이다 이거다 문어의 경우에는 위에서 본 ‘소년’의 경우처럼 소위 ‘통일성’이 확보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어의 패러다임은 ‘통일성’의 측면에서 상당히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언어든지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은 음운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되는데 ‘이것’이라는 대명사 역시 워낙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에 /ㅅ/이 탈락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쉽게 일어난다. 이렇게 통일성이 부족한 패러다임이 있을 때, 학습자는 이 중 가장 자주 사용되는 형태를 ‘기저형(base)’으로 삼아 다른 형태를 만들 때 참고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도른 에밀리의 경우 이 패러다임 중에서 ‘이게’라는 형태를 가장 자주 접했고, ‘이거’가 아닌 ‘이게’를 기저형으로 삼았기에 ‘이거지’보다 ‘이게지’라는 형태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예로 ‘흑백요리사2’에서 샘킴 셰프의 별명으로 사용된 ‘누’ 셰프가 있다. 정호영 셰프가 “믹서기를 누가 돌려줬으면 좋겠다”는 혼잣말을 했을 때 이를 샘킴 셰프가 듣고 묵묵히 이를 수행하며 생긴 별명이다. 물론 현대 한국어에서 ‘누가’는 ‘누구-가’로 분석되는 것이 표준이나, 모음으로 끝나는 명사의 경우 주격은 모두 조사 ‘-가’를 취하게 되고 (예: 친구-가, 누나-가, 오빠-가 등) 따라서 ‘누가’라는 형태를 ‘누’에 주격 조사 ‘-가’가 더해진 것으로 ‘재분석’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중세국어에서는 실제로 ‘누’가 현대국어의 ‘누구’에 해당하는 의문대명사였다. 의문대명사 ‘누’에 의문형 어미 ‘고/구’ (모음조화에 따라 선택)가 결합되어 ‘누구’라고 하면 이 자체로 의문이 완성된 형태였다.[8] 민간어원과 같은 분석이 중세국어를 정확히 복원(?)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러한 유추는 아이들의 모국어 학습 과정에서도 쉽게 관찰되는데, 만 3세 정도 아이들이 ‘가자요’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분명 어른들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들어보지 못한 이런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이는 아이들이 소위 규칙이나 유추를 활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반말 높임말 먹어 먹어요 잡아 잡아요 가 가요 왔어 왔어요 마셨어 마셨어요 잤어 잤어요 위의 예들이 보여주듯, 아이들이 들었을 때 반말에 ‘-요’를 붙이면 높임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가 : 가요 = 가자 : X’와 같은 방식으로 정렬했을 때 X에 해당하는 표현은 ‘가자요’가 될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영어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모든 표현이 규칙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규칙과 불규칙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언어의 학습자들은, 그 언어가 모국어이든 외국어이든, 앵무새처럼 들은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하고, 일정한 규칙을 찾아 적용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8] 현대 한국어 경상방언에서 ‘누꼬?(누구야?)’에 해당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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