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철자는 왜 이렇게 엉망인가

글 13 | 2026년 9월
영어를 배우면서 누구나 불평하는 것이 있다. 영어의 철자는 왜 이렇게 제멋대로인가. 한글은 물론이고 다른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대체로 문자를 보고 읽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알파벳을 사용하는 다른 인도유럽어들을 배우면 한두 달만 배워도 새로운 단어들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물론 한글을 포함해서 소리를 완벽하게 나타내는 문자는 없다. 한국어의 경우 'ㅔ'와 'ㅐ'가 표기는 다르나 소리는 다르지 않고, '안다'의 경우 '그 사실을 안다(to know)'와 '품에 꼭 안다(to hug)'에서 다른 소리로 읽게 되는 등, 문자와 소리가 일대일로 일치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영어에 비교하면 이는 새 발의 피다. 영어의 철자 문제에 대해 가장 유명하고 적절한 예는 Bernard Shaw가 'fish'를 'ghoti'로 쓰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tough', 'women', 그리고 'nation'의 밑줄 친 부분들을 결합하면 'ghoti'를 얻을 수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fish'와 같은 발음이 된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그는 철자 개혁을 강력히 주장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right'와 'write'처럼 소리에서 구별이 안 되는 단어들을 문자에서 구별할 수 있으니 문자만의 기능이 있다는 논리 등으로 철자 개혁을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영어는 어쩌다가 이렇게 괴랄한 철자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까? 이는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그중 몇 가지 대표적인 요인들을 말하려 한다. 첫째는 태생적 한계이다. 현재 사용 중인 알파벳은 영어를 위해 만들어진 문자가 아니다. 로마의 선교사들이 대략 7세기부터 성경을 들여왔고, 성경을 기록한 당시의 알파벳은 라틴어에 최적화된 상태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알파벳은 영어를 위한 문자가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 이후에 'thorn(Þ þ)', 'wynn(Ƿ ƿ)' 그리고 'æ', 'œ' 등의 문자를 추가해서 영어를 기록하였다. 그 이후 15세기부터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철자의 통일성이 요구되면서 17세기까지 영국 전반적으로 철자를 통일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철자 체계를 큰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알파벳과 영어의 소리는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현대 영어에서 (미국영어(General American)를 기준으로) 구별되어 사용되는 소리(음소)는 39개(자음 24개, 모음 15개, 물론 이는 방언에 따라 다르다)이다. 그런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알파벳은 A부터 Z까지 26개이다. 가장 이상적인 문자 체계는 문자와 소리가 일대일 대응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면, 알파벳과 영어는 이러한 대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자음보다 모음에서 더 심각한데, 알파벳에서 모음을 담당하는 문자는 A, E, I, O, U, 다섯 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다섯 문자로 15개의 모음을 표기하려다 보니 철자를 통해 발음을 추정하는 것이 자음보다는 모음에서 더 어려운 문제로 부각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영어에도 다른 언어들의 단어가 차용되어 들어왔고 그 과정에서 차용어의 철자까지 그대로 받아들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같은 철자라도 다른 발음으로 읽히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ch'이다. 'ch'는 독일어 계열 단어의 경우 'church, chicken, choose' 등에서와 같이 [ʧ]로, 프랑스어 계열 단어의 경우 'chef, machine, brochure' 등에서와 같이 [ʃ]로, 그리스어 계열 단어의 경우 'school, chorus, chemistry' 등에서와 같이 [k]로 발음된다. 유럽 지역에서 알파벳이 워낙 범용(?)으로 사용되었기에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 물론 언어의 변화도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 빼 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변화가 대모음추이(Great Vowel Shift)인데, 15~17세기에 장모음들이 모음공간에서 순차적으로 상향이동한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에서 철자 'ee'와 'oo'는 대모음추이 이전에는 [e:]와 [o:]와 같이 발음되었으나 대모음추이를 지나 현재는 'bee', 'need', 'zoo', 'loose' 등에서 보듯이 [i]와 [u]로 발음된다. 이는 알파벳을 사용하는 다른 언어들에서 보기 어려운 대응관계이다. 알파벳을 사용하는 다른 언어들에서는 대체로 철자 'ee'와 'oo'는 여전히 [e:]와 [o:]로 발음된다. 다른 예로서 단어 마지막 철자 'e'는 'cake', 'bite', 'dime'에서와 같이 발음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중세영어 혹은 그 이전에는 모두 모음으로 발음되었기에 철자로 반영되었다. 마지막으로 비록 소수의 경우이긴 하나 문어가 구어로부터 독립적으로 변화하는 경우들이 있다. 'debt'를 보면 발음되지 않는 철자 'b'가 들어있는데, 프랑스어로부터 이 단어를 들여올 때에도 발음상 'b'는 없었다. 이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단어는 'dette'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b'는 어디서 왔을까? 프랑스어 'dette'를 추적하면 라틴어 'debitum'에 이르게 되는데 중세영어 학자들이 이 라틴어 단어와의 연관성을 보이기 위해 철자 'b'를 집어넣은 것이다. 즉 발음과는 아무 상관 없이, 문자의 변화를 일으켰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 'receipt', 'subtle' 등이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영어의 철자는 발음과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으나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효과만 갖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단어 끝 'e'는 그 존재로 인해 앞 모음의 발음을 예측하게 해 주기도 하고 (예: bit vs. bite), 현재의 철자를 통해 그 단어, 혹은 영어가 걸어온 역사를 가늠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수시로 철자 개혁을 하지 않은 덕(?)에, 지금 전 세계는 비록 발음(액센트)은 많이 달라도, 같은 철자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 영어 철자의 문제를 살펴보니 한글이 왜 편리한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글은 한국어를 위해 만들어졌기에 한국어 소리체계에 잘 대응하고 비교적 '젊은' 문자로서 언어변화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기에 문자를 보고 읽기가 수월한 편이다. 영어의 철자가 자연발생 도시라면, 한글은 계획도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문자를 배우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어린아이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든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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