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중요성

글 9 | 2026년 7월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짜증)을 유발했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불규칙 혹은 예외이다. 가장 흔한 예로 동사의 과거형은 많은 경우 접미사 ‘-ed’를 덧붙여 만들게 되는데, 이러한 일반적인 형태를 따르지 않는 동사들이 있다. ‘to be’, ‘to have’를 비롯하여 ‘to go’, ‘to come’ 등과 같은 기초 동사들 가운데 불규칙이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불규칙 동사들은 일일이 기억해야 하기에 영어 초기 학습자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을 주게 된다. 도대체 이런 불규칙들은 왜 생겨난 것이며 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 짜증 섞인 질문을 던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한국어의 수많은 불규칙 용언들(ㅂ-불규칙, ㄷ-불규칙, ㅅ-불규칙 등등)을 배우는 한국어 학습자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오백 년 전에 사용되던 중세영어에는 현재보다 더 많은 불규칙 동사가 존재했다. 그 당시 문법에서는 강동사(strong verb)라 불리던 불규칙 동사는 500개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현대 영어에서 불규칙 동사는 몇 개나 될까? 이는 방언이나 화자마다 다르지만 100개에서 150개 사이라고 알려져 있다. 즉 5백여 년의 시간 동안 약 70%가 넘는 불규칙 동사들이 사라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라졌다기보다는 규칙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몇몇 예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to dream’ 동사의 경우 과거형이 ‘dreamt’였으나 현재는 ‘dreamed’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며, ‘to dive’도 과거의 ‘dove’를 ‘dived’가 대체하였다. 현재 변화 중인 동사로는 ‘to dwell’을 들 수 있는데 ‘dwelt’를 사용하는 사람들(주로 영국영어)과 ‘dwelled’를 사용하는 사람들(주로 미국영어)이 혼재한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가장 유력한 가설은 ‘불완전한 언어습득’이다. 아이들이 모국어를 익히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양한 사례들을 종합하여 일반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는 불규칙 동사들까지 규칙을 적용하는 사례들이 발견되는데 ‘to hold’의 과거형으로 불규칙형 ‘held’ 대신 ‘^(*)holded’를 발화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이후에 불규칙 동사들은 개별적으로 학습되면서 성인과 같이 규칙과 불규칙이 혼재한 문법체계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원어민들조차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불규칙 동사들의 경우 아이가 불규칙형을 학습할 기회가 많지 않기에 이 시기에 정확한 형태를 익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이 아이는 그 불규칙 동사에도 규칙을 적용하게 되고, 이런 아이들이 많아질 경우 그 동사는 규칙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현대영어에서 불규칙으로 남아있는 동사들은 대부분 자주 사용되는 동사들, 즉 기초 동사들이다. 이 동사들은 비록 불규칙이라 개별적으로 학습해야 하지만 워낙 자주 듣고 말하기 때문에 학습이 잘 될 수밖에 없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 영어의 단어강세가 있다. 영어음운론을 배우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영어의 단어강세에 규칙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필자가 대학입학을 위해 치렀던 학력고사에는 영어강세를 묻는 질문이 하나씩 나왔었는데, 그러한 질문이 성립한다는 것은 단어강세에 규칙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어의 강세가 규칙에 의해 주어진다면 그 규칙만 알면 굳이 개별 단어의 강세를 암기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영어의 단어강세는 엄연히 규칙에 의해 주어지고, 다만 동사의 과거형처럼 예외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예외가 많아 보이는 이유는 그 예외들이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강세 역시 자주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의 경우 소위 ‘규칙화’를 통해 현재는 규칙에 맞는 강세유형을 보인다. 현재 변화 중인 단어의 예로 ‘garage’를 들 수 있는데 미국영어에서는 이 단어의 원언어인 프랑스어의 강세유형을 따라 두 번째 음절에 강세[ɡəˈrɑʒ]를 주지만, 영국영어에서는 영어의 강세규칙을 따라 첫 번째 음절에 강세[ˈɡærɪdʒ]를 주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한국어의 ‘걷다(walk)’가 ‘걸어’가 되는 불규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일 걷기 때문에 이 불편한 변화를 기꺼이 외우고 유지한다. 만약 ‘걷다’가 1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단어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걷어’로 규칙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언어의 불규칙성은 역설적으로 그 단어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한다. 이를 진화론의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면, 언어의 세계에도 다윈의 적자생존 원리가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자주 쓰이지 않는 불규칙은 기억 속에서 도태되어 규칙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고, 오직 강력한 빈도로 살아남은 강자들만이 불규칙이라는 개성을 유지하며 생존한다. 불규칙 동사 리스트는 언어 진화의 생존자 명단인 셈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불규칙은 언어학습자를 괴롭히는 괴물이 아니라 한 언어가 보여주는 역사적 유산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불규칙 동사들은 과거에는 나름의 질서를 가진 ‘강동사’ 군단이었다. 모음을 변화시켜 과거를 나타내던 고대 게르만어의 유산이 현대까지 화석처럼 남은 것이다. 즉, 불규칙 동사를 배우는 것은 수천 년 전 조상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고고학적 경험이기도 하다. 둘째로는 언어가 학습되는 과정에서 ‘반복’만큼 중요한 요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모국어를 배우는 어린아이든, 외국어를 습득하는 성인이든 결국 반복을 통해 언어의 요소들을 배우게 되고,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문법이라도 반복되면 끝내 학습이 된다. 결국 언어 학습에서 반복은 단순히 암기를 하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뇌에 그 단어의 ‘생존 근거’를 마련해주는 일이다. 불규칙한 예외들이 반복을 통해 내 것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언어의 깊은 역사와 본질에 닿게 된다. 따라서 외국어를 학습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냥 듣는 것부터 시작하시기 바란다. 물론 반복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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