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를 통해 알 수 있는 한국어의 특징

글 11 | 2026년 8월
우연히 'chocolate'의 한국어 표기가 현재는 '초콜릿'이지만 과거에는 '쵸코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트로 디자인을 적용하면서 옛날 표기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1987년 디자인에도 '초코렡'이라는 표기법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차이 중에서 필자의 이목을 끈 것은 마지막 자음 'ㅌ'이다. 영어의 마지막 자음이 't'이므로 'ㅌ'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는데 어째서 현재는 '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한국어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어에는 소위 '7종성법'이라 불리는 중화현상이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변별적으로 사용되는 자음(음소)는 21개인데, 그 중 20개가 초성에서 서로 구별된다(예: 다리, 사리, 자리 등). 그러나 종성에는 7개의 소리만 허락되는데(/ㅂ/, /ㄷ/, /ㄱ/, /ㅁ/, /ㄴ/, /ㅇ/, /ㄹ/),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초성에서의 대립 혹은 구분이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낫', '낮', '낱', '낯'으로, 이 단어들이 단독으로 발음되면 모두 [낟]으로 발음되어 차이가 없게 된다. 이 현상은 혀끝을 쓰는 소리들에서 가장 극적으로 일어나 초성에서 9개로 구별되는 소리들이(/ㄷ/, /ㅌ/, /ㄸ/, /ㅈ/, /ㅊ/, /ㅉ/, /ㅅ/, /ㅆ/, /ㅎ/) 종성에서는 모두 [ㄷ]으로 발음되면서 그 변별성이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이 9개의 자음들 중에서 명사의 마지막 자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ㅅ/, /ㅈ/, /ㅊ/, /ㅌ/ 네 개 뿐이다. (그 외에는 존재하더라도 한두 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넷 중에 /ㅅ/이 가장 많다. 우리말 역순사전(유재원, 1985)에서 확인한 결과 /ㅅ/으로 끝나는 명사는 473개, /ㅈ/의 경우 38개, /ㅊ/의 경우 171개, 그리고 /ㅌ/의 경우 184개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ㅅ/의 경우가 많기는 해도 그리 압도적이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사들이 실제로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어 사용 빈도(강범모·김흥규 2009)에서 최상위빈도 1,000 단어에 속한 명사들 중 /ㅅ/으로 끝나는 명사의 빈도는 총 428,729회임에 비해 /ㅈ/의 경우는 0회, /ㅊ/의 경우는 7,059회, 그리고 /ㅌ/의 경우는 10,004회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일상에서 듣는 명사의 마지막 소리가 [ㄷ]인 경우 대부분은 /ㅅ/이 말음에 위치하면서 발음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말음의 [ㄷ]을 자연스럽게 두음의 /ㅅ/으로 연결시키게 된다. 그러한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그리고 이는 과적용되어 원래 /ㅅ/이 아닌 단어들에도 적용하고 있다. '솥이'를 [소치]로 발음하기도 하나 [소시]로도, '꽃을'을 [꼬츨]로 발음하기도 하나 [꼬슬]로도 발음한다. 그리고 이는 영어 차용어의 표기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초콜릿'을 조사와 함께 발음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콜리시], [초콜리슬]로 발음하지, [초콜리티/치]나 [초콜리틀/츨]로 발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어에서 가장 흔한 유형 이/그/저것[걷] → 이/그/저것-을 [거슬] 이/그/저곳[곧] → 이/그/저곳-에 [고세] 한국어내 전이(유추) 꽃[꼳] → 꽃을[꼬슬] 솥[솓] → 솥에[소세] 외래어 전이(유추) 초콜릿[릳] → 초콜릿을[리슬] 마켓[켇] → 마켓에[케세] 정리하면, 이는 /ㅅ/이 말음에서 [ㄷ]으로 발음되는 현상이 오히려 반대로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말음에서 [ㄷ]으로 발음되면 두음에서는 [ㅅ]으로 발음된다는 일종의 역규칙이 생성된 것이다. 이는 한국어 화자들이 언어를 사용하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를 '통계적'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한국어 뿐 아니라 다른 언어들 역시 통계적으로 학습되며, 이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 확률적인 기대를 형성하고, 그 기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현상을 해석한다. 언어 학습에서 나타나는 유추와 통계적 접근은 결국 인간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려는 가장 본질적인 생존 방식의 투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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