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운론 · 한국어 · 언어 변화
외래어 표기를 통해 알 수 있는 한국어의 특징
What Loanword Spelling Reveals About Korean
우연히 'chocolate'의 한국어 표기가 현재는 '초콜릿'이지만 과거에는 '쵸코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트로 디자인을 적용하면서 옛날 표기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1987년 디자인에도 '초코렡'이라는 표기법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차이 중에서 필자의 이목을 끈 것은 마지막 자음 'ㅌ'이다.
영어의 마지막 자음이 't'이므로 'ㅌ'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는데 어째서 현재는 '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한국어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어에는 소위 '7종성법'이라 불리는 중화현상이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변별적으로 사용되는 자음(음소)는 21개인데, 그 중 20개가 초성에서 서로 구별된다(예: 다리, 사리, 자리 등). 그러나 종성에는 7개의 소리만 허락되는데(/ㅂ/, /ㄷ/, /ㄱ/, /ㅁ/, /ㄴ/, /ㅇ/, /ㄹ/),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초성에서의 대립 혹은 구분이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낫', '낮', '낱', '낯'으로, 이 단어들이 단독으로 발음되면 모두 [낟]으로 발음되어 차이가 없게 된다. 이 현상은 혀끝을 쓰는 소리들에서 가장 극적으로 일어나 초성에서 9개로 구별되는 소리들이(/ㄷ/, /ㅌ/, /ㄸ/, /ㅈ/, /ㅊ/, /ㅉ/, /ㅅ/, /ㅆ/, /ㅎ/) 종성에서는 모두 [ㄷ]으로 발음되면서 그 변별성이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이 9개의 자음들 중에서 명사의 마지막 자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ㅅ/, /ㅈ/, /ㅊ/, /ㅌ/ 네 개 뿐이다. (그 외에는 존재하더라도 한두 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넷 중에 /ㅅ/이 가장 많다. 우리말 역순사전(유재원, 1985)에서 확인한 결과 /ㅅ/으로 끝나는 명사는 473개, /ㅈ/의 경우 38개, /ㅊ/의 경우 171개, 그리고 /ㅌ/의 경우 184개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ㅅ/의 경우가 많기는 해도 그리 압도적이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사들이 실제로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어 사용 빈도(강범모·김흥규 2009)에서 최상위빈도 1,000 단어에 속한 명사들 중 /ㅅ/으로 끝나는 명사의 빈도는 총 428,729회임에 비해 /ㅈ/의 경우는 0회, /ㅊ/의 경우는 7,059회, 그리고 /ㅌ/의 경우는 10,004회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일상에서 듣는 명사의 마지막 소리가 [ㄷ]인 경우 대부분은 /ㅅ/이 말음에 위치하면서 발음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말음의 [ㄷ]을 자연스럽게 두음의 /ㅅ/으로 연결시키게 된다. 그러한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그리고 이는 과적용되어 원래 /ㅅ/이 아닌 단어들에도 적용하고 있다. '솥이'를 [소치]로 발음하기도 하나 [소시]로도, '꽃을'을 [꼬츨]로 발음하기도 하나 [꼬슬]로도 발음한다. 그리고 이는 영어 차용어의 표기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초콜릿'을 조사와 함께 발음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콜리시], [초콜리슬]로 발음하지, [초콜리티/치]나 [초콜리틀/츨]로 발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어에서 가장 흔한 유형
이/그/저것[걷] → 이/그/저것-을 [거슬]
이/그/저곳[곧] → 이/그/저곳-에 [고세]
한국어내 전이(유추)
꽃[꼳] → 꽃을[꼬슬]
솥[솓] → 솥에[소세]
외래어 전이(유추)
초콜릿[릳] → 초콜릿을[리슬]
마켓[켇] → 마켓에[케세]
정리하면, 이는 /ㅅ/이 말음에서 [ㄷ]으로 발음되는 현상이 오히려 반대로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말음에서 [ㄷ]으로 발음되면 두음에서는 [ㅅ]으로 발음된다는 일종의 역규칙이 생성된 것이다. 이는 한국어 화자들이 언어를 사용하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를 '통계적'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한국어 뿐 아니라 다른 언어들 역시 통계적으로 학습되며, 이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 확률적인 기대를 형성하고, 그 기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현상을 해석한다. 언어 학습에서 나타나는 유추와 통계적 접근은 결국 인간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려는 가장 본질적인 생존 방식의 투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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