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다보면 모국어(필자에게는 한국어)에 없는 것들이 다른
언어에는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서 왜 학습자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중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에는 관계대명사가 그러했다.
물론 한국어에도 하나의 문장이 명사를 꾸미도록 해 주는 형태소가
있으나(내가 어제 먹-은 사과), 영어의 관계대명사처럼 사람인지
사물인지(who vs. which), 주어인지 목적어(who vs. whom)인지 따지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영어는 참
친절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프랑스어는
동사의 변화가 영어보다 몇 배는 복잡하고 명사도 자연성과 상관없이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관사나 형용사도 그 성에 맞춰 사용해야 한다. 대학에 와서
살짝 맛만 본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몽골어 등도 당연히 그러한
어려움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이렇듯 한국어에 없는 요소들을 배우는 데에는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었고, 이러한 요소들이 없어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
같은데 왜 각 언어는 이렇게 복잡한 문법을 가지게 되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전공으로 언어학을 배우고 또 가르치게 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다.
McWhorter(2003)[1]는 개별 언어들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졌다고 말한다.
‘필요 이상’이라 함은 앞선 필자의 생각대로 의사소통에 필수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영어의 ‘완료시제’나 프랑스와 같은 유럽의 언어들에
나타나는 명사의 ‘성’은 문법에서 필수적이라 보기 어렵고 그러한 요소가
없는 언어들이 많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복잡한
문법은 (모든 경우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고립되었을 때 상대적으로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 즉 문법이
단순해지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피진(pidgin)과 크리올(creole)이다.
다양한 모국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경우 하나의
언어를 선택하여 사용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대화 참여자들이 모국어 수준의
문법을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게 되므로 단순화된 문법체계를 갖게
된다. 이러한 예로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를 들었는데, 스와힐리어가
아프리카에서 많이 사용되다 보니 같은 계열의 다른 언어들에 존재하는
복잡한 명사의 분류체계를 잘 따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정리하면,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하나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언어의 문법은 점점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다양한
언어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참여하게 되면 그 언어의 문법은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소수에 의해 복잡한 문법을 가지게 되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강한 집단의식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향은
단어에서도 쉽게 관찰되는데 특수용어(jargon)가 대표적인 예이다. 소수의
집단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보편적인 의미보다는 그 집단의 사람들만 이해하는
의미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필자가 공부하는 음성학의 분야에서 ‘stop’은
자음 중 ‘정지음’을 가리키는데 한국어의 ‘ㄱ, ㄲ, ㅋ, ㄷ, ㄸ, ㅌ, ㅂ, ㅃ,
ㅍ’와 같은 소리들이 포함된다. 공기의 흐름을 완전히 정지시킴으로써 만드는
자음이기에 ‘stop’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음성학을 접하지 않은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한 집단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특수용어를 사용하면서 소속감을 다질 수 있으나, 외부 사람들에게는
소외감을 안겨줄 가능성도 있다.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을 일부러 어기면서 언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이 언어를 새롭게
배우는 사람들의 부족함을 탓하며 편을 가르는 것은 언어의 고립 또는 그
사회의 고립을 자처하는 일일 수도 있다.
영어가 세계어로 부상한 것은 물론 정치나 경제와 같은 언어 외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언어 내적인 요인을 찾는다면
영어의 초기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작용했다고 본다. 영어의
친척뻘인 다른 인도유럽어들과 비교해 보면 영어는 동사의 변화 폭이 크지
않고 명사의 성도 없으며 문법이 요구하는 명사의 변화도 단/복수형의 구별
정도로 매우 단순하다. 그리고 이는 영어가 역사적으로 다른 언어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영어 화자들이 다른 언어 화자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즉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게 되면서 영어의 문법은 단순해지는 과정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한국어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한국어의 순수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의 한민족이 다른 민족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한국어
역시 다른 언어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으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한국문화가 부상하는 시대에 더 많은 언어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어를 학습하여 사용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어는 지금과는 다르게 변할 가능성이 높으며, 문법이 비교적
단순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는 절대 한국어의 쇠퇴가 아니며 오히려
한 민족의 언어에서 세계의 언어로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복잡한 문법도 배워서 제대로 사용했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변화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가 없다. 20세기에 한국어가
한국인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절에는 외국인들의 어설픈 한국어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나 현재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제2언어로
배워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도 이미 이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변하지 않는
언어는 이미 죽은 언어이며, 살아있는 언어는 반드시 변화하게 되어 있다.
나아가 현재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고립을 자처하기보다는 변화를
수용함으로써 한국어의 생명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어는 다시 더 많은 사람에게
사용될 것이다.
[1] The Power of Babel, HarperCollins Publishers,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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